게시날자 : 2021-07-23

주체110(2021)년 7월 23일 《기사》

 

전화의 나날에 찾으신 대학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생사를 판가리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민족간부양성사업에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주체41(1952)년 6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렬처절한 전쟁의 포연속을 헤치시며 당시 평안북도 정주군 고덕면과 마산면에 자리잡고있던 김책공업대학(당시)을 찾아주신것은 저녁무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에 도착하신 그길로 교직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피해정형부터 알아보시였다.

대학일군으로부터 아직까지는 큰 폭격을 받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제서야 안도의 빛을 띄우시면서 대학교원들과 학생들은 다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이며 혁명전우들이라고, 그들중에는 락동강계선에까지 나가 피흘리며 적들과 용감하게 싸운 동무들이 적지 않다고, 그러므로 교원들과 학생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는것은 대학일군들의 신성한 의무일뿐아니라 동지적의리이기도 하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을 교육교양하는 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교시를 주시고나서 다음날 금속공학부 합동강의실에서 교직원, 학생들과 마주앉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의실과 침실은 모자라지 않은가, 교과서와 참고서는 있는가, 제대군인학생들이 공부하는데서 애로되는것은 무엇인가, 배는 고프지 않은가, 목욕은 자주 하는가 등을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침구류며 참고서도 해결해주겠다고, 콩도 하루에 한사람당 100g씩 더 보충해줄테니 두부도 해주고 비지도 해먹이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을 떠나시기에 앞서 교직원, 학생들앞에서 《유능한 기술인재를 더 많이 양성하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이곳으로 떠나올 때 일군들이 폭격이 심하기때문에 위험하다고 만류하였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복구건설을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기술간부양성사업을 담당수행하고있는 김책공업대학에 나와보는것을 잠시도 미룰수가 없어서 오늘 이렇게 동무들을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민족기술간부문제를 해결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페허로 된 우리 나라를 앞으로 다시 일떠세우는가 못 세우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므로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렇기때문에 당중앙위원회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있는 조건에서도 민족기술간부양성사업에 항상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으며 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있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을 마치시면서 전쟁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공화국정부는 과학연구비를 줄여본적이 없다고, 서적과 실험기구들을 어떤 일이 있어도 보장해주겠으니 과학연구사업을 마음껏 하라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을 끝마치시며 인민군대가 전선에 적들과 용감하게 싸워 승리하고있는것과 같이 이 대학 교직원, 학생들도 교수교양사업과 과학연구사업에서 불굴의 투쟁정신을 발휘하여 보다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크나큰 기대와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준엄한 전쟁의 환경속에서도 민족간부의 대부대를 키워낼수 있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우리의 기술일군들을 가지고 우리의 힘으로 혹심하게 마사졌던 인민경제를 그처럼 짧은 기간에 복구발전시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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