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1-11

주체110(2021)년 1월 11일 《혁명일화》

 

《오국리의 건설주는 내가 되겠소!》

 

주체63(1974)년 5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오국리를 찾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곳의 한 일군에게 마을에 왜 살림집을 짓지 않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미처 대답을 드리지 못하자 그이께서는 여기는 농사를 아주 잘하는 곳인데 살림집을 지어주지 않아 아직도 적지 않은 농민들이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고있다고 가슴아픈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다음날 황해남도 농촌건설부문 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오국리의 일군을 맨 앞자리에 나앉게 하신 다음 손수 그곳의 지형도를 짚어가시며 마을의 위치와 살림집의 모양, 내부구조, 난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건설자재와 건설기계, 운수기재 등 무엇이든 다 주겠으니 1 000세대를 목표하고 1년동안에 오국리를 현대적이며 문화적인 농촌으로 건설해보자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순간 장내에는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한개 리에 현대적인 살림집을 1 000세대나 짓는것도 놀라왔지만 1년이라는 기한도 정말 상상할수 없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안악군의 한 일군에게 쌀을 생산하느라고 수고하는 오국리농민들을 건설에 돌려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이르시면서 건설력량을 친히 무어주시고 오국건설대라고 명명해주시였다. 그리고 철도와 재령강배길을 리용하여 건설자재들을 실어나를 대책까지 구체적으로 세워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아직 미흡한 점이 있으신듯 생각을 더듬으시던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책상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시며 조용히 뇌이시였다.

《오국리건설을 누가 책임지고 한다?… 그래도 누가 건설을 책임져야겠는데…》

장내는 갑자기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간단치 않은 이 건설을 누구에게 맡기실것인가 하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이를 우러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국리의 건설주는 내가 되겠소!》라고 하시는 어버이주석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울려퍼졌다.

(온 나라의 일을 돌보셔야 하는 우리 수령님께서 한개 농촌마을의 건설주가 되시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되여 그이의 지도밑에 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였으며 오국리건설은 불과 1년동안에 끝나게 되였다.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서 돌아오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쌓이신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국리농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려고 먼길을 또다시 찾아가시였다.

새로 건설된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이번에 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가보았지만 이만한 농촌부락은 보지 못했다고, 오국리사람들은 말그대로 신선놀음을 할수 있게 되였다고 기쁨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이윽고 새집들이를 한 어느 한 집에 들리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자신께서 여기에 와보고 제일 만족하게 생각하는것은 농촌살림집들에 수도가 다 들어간것이라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때 집로인이 어버이수령님의 덕분으로 이런 훌륭한 집에서 살게 되였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아뢰였다.

그러자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로인에게 이것이 왜 꿈이겠는가고, 지금은 로동당시대가 아닌가고, 당이 농민들에게 이런 혜택을 베풀어주었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군들에게 《오국리에 새로 지은 살림집들을 문명하게 잘 꾸렸습니다. 농촌살림집들을 이렇게 짓는것이 바로 농촌문화혁명입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앞으로 살림집과 마을을 더 잘 꾸리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농장원들의 자그마한 불편도 헤아리시여 수많은 뻐스와 화물자동차, 자전거를 보내주시였다.

오늘도 하늘같은 그 은정을 노래하며 황금이삭 설레이는 어러리벌에 서면 잊지 못할 그날에 오국리의 건설주가 되겠다고 하신 우리 주석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다시금 메아리쳐오는것만 같다.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