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0-03-01

주체109(2020) 년 3월 1일 《기사》

 

절대적인 기준

 

무릇 창조란 인간활동의 한 형태이다.

그렇다고 하여 매개 인간들의 창조활동이 모두 꼭같이 진행되는것은 아니다.

다 자기의 고유한 특색과 진행과정이 있다. 서로 다른 주장과 론리에 따라 이루어지는것이 바로 창조활동이다.

그 주되는 리유의 하나는 바로 창조활동의 출발점과 기준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데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처음 생긴것이라고 하여 새것으로 되는것도 아니며 누가 새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여 새것으로 되는것도 아닙니다. 새것으로 되자면 사회발전과 인민의 요구와 지향에 맞아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은 그대로 세기적인 창조의 불멸의 서사시였다.

그이의 창조적사색과 활동, 령도의 중심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잡고있었던가.

인민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 한번 자신을 인민과 떼여놓고 생각해본적이 없으시였다.

하기에 인민을 위하여, 인민이 바라는대로, 인민이 좋아하게 창조하는것은 우리 장군님의 리념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으로부터 청을 받으신적이 있었다.

그것은 건축물의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기준에 대한 물음이였다.

그이께서는 일군에게 지난 시기에 없었던 건물이 이 땅에 솟아났다고 하여 새로운 창조물로 되는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건축물의 형성안에 대한 합격과 불합격의 절대적인 기준은 새것에 대한 독특한 창조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이라고, 창조의 가치는 오직 새로운 자막대기로만 잴수 있다고, 내가 말하는 새로운 자막대기란 창조를 삶의 방식으로 삼는 우리 당과 인민의 지향과 요구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가르치심속에는 참으로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창조물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평가기준에는 인민들의 기쁨과 행복속에 창조의 보람이 있고 자신의 한생을 다 바쳐서라도 인민들에게 오직 행복과 번영을 위한 창조물을 안겨주시려는 그이의 숭고한 인민관이 그대로 집약되여있었다.

그래서였다.

언제나 무엇을 하나 보시거나 새 창조물을 대하실 때면 우리 장군님 인민들이 좋다면 좋은것이라고 평가하신것은.

지금도 우리의 귀전에 들려온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 무엇을 보시여도 인민들이 좋아하는가고 제일먼저 물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다정하신 음성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령도아래 조국땅우에 일떠선 크고작은 모든 창조물들은 철두철미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인민의 향유물로 되고있다.

정녕 그이의 창조적사색과 활동의 출발점은 인민이였으며 창조의 절대적기준은 인민의 지향과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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