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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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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1월 12일 [기사]

 

필승의 신념으로 빛나는 혁명가의 한생

 

1905년 11월 4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오늘의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에서 김보현선생님의 셋째아드님으로 탄생하신 김형권동지께서는 어렸을적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정의감이 강하시였다. 어려운 생활의 시련속에서 당대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깊이 깨닫게 되신 김형권동지께서는 맏형님이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업을 도우시면서 혁명활동에 참가하시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지도를 받으시며 혁명활동을 더욱 정력적으로 벌려나가시던 김형권동지께서는 1930년 7월 6일 조선혁명군에 입대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으로부터 국내의 풍산과 단천, 함흥을 거쳐 평양부근에까지 진출할 과업을 받아안은 김형권동지께서는 무장소조를 이끄시고 1930년 7월 안도지방을 떠나 장백현 지양개와 절골 등지를 중심으로 하는 압록강연안일대에서 적극적인 정치군사활동을 벌리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장백현 소덕수전투와 지양개골 뒤산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를 통하여 국내진출과 앞으로의 군사활동에서 도움이 될 귀중한 경험을 체득하면서 국내에로 진출할 군사적준비를 갖추어나가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이에 기초하여 1930년 8월초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로 진출하시였다.

조국땅에 진출한 조선혁명군소조의 멸적의 첫 총소리는 풍산군 파발리에서 높이 울렸다.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삼수, 풍서를 거쳐 파발리에 들어서신 김형권동지께서는 무장소조를 이끄시고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이 고장 인민들을 악착하게 탄압하던 악질경관 오빠시순사부장을 처단하고 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을 벌리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총소리를 듣고 모여온 군중들앞에서 우리는 일제놈들과 싸우는 조선혁명군이다, 오늘은 오빠시 한놈을 처단하지만 2천만겨레가 힘을 합치고 손에 무장을 들고 싸우면 철천지원쑤 일제침략자들을 능히 쳐물리칠수 있다고 하시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에 무장을 들고 싸움에 나서라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그후 김형권동지께서는 순간도 멈춤을 모르는 강의한 투쟁정신을 지니고 함경남도의 여러 지역들을 종횡무진하면서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려 일제의 발굽밑에 신음하던 국내인민들에게 신심을 안겨주고 놈들을 커다란 공포와 불안속에 빠뜨려놓으시였다.

혁명에 대한 굳은 신념과 충실성을 깊이 간직하신 김형권동지께서는 변절자의 밀고로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시였을 때에도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가시였다.

김형권동지를 체포한 일제교형리들은 이리떼마냥 달려들어 갖은 중세기적고문들을 다 들이댔다. 그리고도 김형권동지의 굳은 신념을 꺾을수 없게 되자 적들은 그이께 온갖 가혹한 형벌을 다 들씌웠다. 그러나 김형권동지께서는 중세기적인 모진 고문이 중단없이 가해지는 감옥도 하나의 투쟁무대로 삼으시고 견결히 싸우시였고 법정에서도 일제의 죄상을 추상같이 단죄하면서 무장한 강도들과는 무장으로 싸워야 한다고 소리높이 웨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삼촌이 이처럼 법정에서 당당하게 처신할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혁명에 대한 신념과 충실성이였다고, 삼촌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한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을 정의롭고 용감하게 만들며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있는 존재로 되게 하는 신념에 대한 배신이였을것이라고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 옥중투쟁을 벌리시던 어느날 그이께로 함께 투쟁하다 체포된 무장소조의 한 성원이 혁명가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 목숨으로 비밀을 고수하겠다는 통방신호를 보내왔을 때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그에게 이런 회답을 보내시였다.

지조를 지킴은 혁명가의 초보적임무다. 맡겨진 임무를 결사코 다함이 우리의 본신임무다. 이제부터 투쟁마당은 감옥이다. 여기에는 팔도강산도처에서 압송되여온 선각자들과 애국자들이 수많다. 그들의 가슴에 혁명의 불을 지르면 앞으로 출옥하여 조국땅천지에 혁명의 불을 지를것이니, 우리는 누리에 붙는 불!

감옥이 투쟁마당으로 되여가는데 겁을 먹은 일제교형리들이 온갖 만행으로 혁명가들을 굴복시키려 하다못해 살인재판놀음을 벌려놓고 김형권동지께 15년의 징역형을 언도했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일제야말로 우리 강토에 기여든 침략자, 우리 나라의 은금보화를 략탈해가는 날강도, 무고한 조선인민을 닥치는대로 죽이는 살인자이다, 조선인민은 네놈들의 악독한 죄행을 천추에 잊지 않을것이며 천백배로 복수하고야말것이다.》라고 추상같이 단죄하시며 의자를 들어 놈들에게 힘껏 던지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생명의 마지만순간에 수감자들에게 김일성 내 조카이다. 그는 지금 만주에서 큰 혁명부대를 이끌고 왜놈들을 족치고있다. 그 부대가 국내에 쳐들어올 날은 멀지 않았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장으로 싸우라. 무장을 들고 싸워야 왜놈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동지들에게 끝까지 싸워달라는것과 앞으로 가족들을 만나면 최후의 순간까지 굴하지 않고 싸웠다는것을 전해달라는 마지막부탁을 남기시였다.

1936년 1월 12일 성에가 하얗게 불린 차디찬 감방에서 그리도 열렬하고 불같은 혁명열로 높뛰던 김형권동지의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그때 김형권동지는 31살의 젊으신 나이였다.

참으로 조선혁명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치시며 위대한 주석님의 조국해방위업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가신 김형권동지의 한생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어떻게 살며 싸워야 하는가를 후대들에게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준 참된 혁명가의 고귀한 한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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