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0-09-06

주체109(2020) 년 9월 6일 《상식》

 

력사가 오랜 민족요술작품들

 

요술은 사람의 손재간과 기자재조작에 의하여 사물현상을 시각적으로 달리 보이게 하는 교예예술의 한 형태이다.

우리 나라에서 요술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

요술종목은 삼국시기의 그림에도 반영되였으며 고려시기에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고려의 18대왕인 의종이 례성강에서 수희(물속에서 진행되는 교예종목)를 비롯한 여러 놀음을 구경하였는데 이때 한 광대가 왕앞에서 불을 입에 머금었다가 토하는 《귀신놀이》를 하던중 실수하여 배 1척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고려전반기에 이미 불토하기를 비롯한 요술작품들이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고려말엽의 문인 리색은 자기의 시 《구나행》에서 민간예술인들에 의하여 공연된 여러가지 종목가운데는 불을 토하고 칼을 삼키는것도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요술작품들은 관중들에게 신비한감을 주게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기능요술종목들이 더 다양해졌는데 노끈매듭풀기, 글자알아맞추기, 돈재주와 같은 작품들이 있었다.

《영조실록》에는 《어느 한 사람이 칼로 종이를 오려 노끈을 꼬아 단단히 매듭을 짓더니 주인이 앉아있는 방석밑에 넣는것이였다. 잠시후에 끄집어내여보니 다 풀어지고 매듭이 없었다. 그리고는 또 보지 않는데서 딴 사람이 글을 써서 봉인한것을 알아낼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쇠 금〉자와 〈칼 도〉자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써서 손으로 비벼가지고 와서 앞에 놓으니 그 사람이 한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글자를 쓰기에 온 좌석의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당시 높은 기능을 가진 요술사들이 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그후 요술은 《얼른》이라고 불리우면서 공연되였는데 그 말은 요술사의 빠른 손재간으로 관중들의 시각을 《얼른얼른》하게 하여 그들의 눈을 속인다는 뜻에서 불리운 말이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던 민족요술유산들은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의 산물로서 민족교예유산을 더욱 풍부히 하고 발전시키는데서 큰 역할을 놀았다.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