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9-02-16

주체108(2019) 년 2월 16일 《련재》

 

7. 가장 큰 공적

 

간곡한 당부

 

 

유언이란 림종의 마지막시각에 남기는 말이다.

인간이 생의 마지막순간에 이르면 떠오르는 생각, 남기고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유언에 한 인간이 그처럼 생각하고 그토록 바라며 갈망하던것이 그대로 반영되니 후세의 인간들은 그것을 놓고 그 인간의 진가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것은 유언에 가식과 거짓이 깃들지 못하기때문일것이다.

력사에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미래의 세계는 나를 리해할것이며 나의 가치를 알게 될것이다.》, 《나의 몸을 조국에 묻어달라.》 등의 훌륭한 유언을 남겨 인류의 존경과 사랑속에 길이 기억되는 명인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다면 력사에 전무후무한 만고의 녀걸이신 김정숙녀사께서 생의 마지막순간에 남기신 당부, 유언은 무엇인가.

위대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간직하고계시는 녀사에 대한 추억은 헤아릴수 없이 많은데 어느 장소, 어느 때에나 찾아오는 녀사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님을 추억할 때면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나에게 아버지장군님을 잘 받들어나가라고 하시던 말씀이 언제나 가슴뜨겁게 울립니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1980년대의 어느해 12월 24일, 녀사의 탄생일에 하신 교시라고 한다.

참으로 녀사께서는 오매불망 어리신 아드님께서 주석님의 뜻을 굳건히 이어나가시기를 절절히 바라고 또 바라시였다.

기나긴 선군혁명령도의 나날 장군님께서는 수수한 잠바옷에 야전솜옷을 입으시였을뿐 번쩍이는 장군복을 입고 나서신적은 단 한번도 없으시였다.

그런데 사실 어린시절부터 장군님께서는 남달리 군복을 사랑하시였다고 한다.

1948년 2월 초순, 력사적인 조선인민군창건 열병식이 끝난 다음 행사에 참가했던 몇몇 항일의 녀투사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녀사께서는 아드님의 생일을 맞이해 옷을 한벌 해주자고 하는데 어떤 형식이였으면 좋겠는가고 그들의 의견을 물으시였다.

녀투사들은 그러지 않아도 아드님께서 백두산밀영에서 탄생하시였을 때 쪽무이포단밖에 해드리지 못한데 대해 죄송함을 금치 못하고있는데 이번에는 정말 훌륭한 옷을 만들어드리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장군복》형식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장군복》제작은 곧 시작되였다.

얼마후 피복공장의 한 일군이 《장군복》을 시침해가지고 녀사를 뵙게 되였다.

녀사께서는 그것을 아드님께 입히시고 옷의 맞춤새를 가늠해보시며 매우 만족하시여 어리신 장군님께 마음에 드는가고 물으시였다.

아드님께서도 매우 마음에 들어하시자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정성을 다하여 《장군복》을 완성하였다.

며칠후 녀사께서는 그 옷을 아드님께 입히고 몹시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입고 서니 아버지장군님 같구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시던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옷을 찾으러 공장에 갔을 때 로동자아저씨들이 이 《장군복》에는 내가 커서 장군이 되여줄것을 바라는 인민들의 념원이 담겨져있다고 하였다고, 그래서 나는 로동자아저씨들에게 조선을 지키고 빛내는 장군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하시였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며 우리 정일이가 말을 참 잘했다고, 아버님께서 조선독립대장이 되시여 왜놈들을 쳐부시고 조선을 독립하신것처럼 앞으로 조선군대의 대장이 되여 남조선에 기여든 미국놈들을 쳐부시고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녀사의 말씀을 들으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안광에는 백두산장군의 정기가 넘쳐흐르고있었다.

그날 김일성주석님께 녀사께서는 아드님께서 지금 그 옷을 입은 모습을 아버님께 보여드리겠다고 자지도 않고 기다리고있다고, 새옷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의 소원대로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올리시였다.

잊지 못할 그날 《장군복》을 입으신 어리신 장군님을 주석님앞에 내세우신 녀사의 자애로운 만면에서는 봄날같은 미소가 한껏 어려있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지금도 어린 나에게 《장군복》을 입혀주시면서 장차 훌륭한 장군이 되여 아버님을 잘 받들어모시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님의 인자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교시하시였다.

1948년의 늦가을 어느날 녀사께서 잠든 아드님의 곁에서 뜨개옷을 뜨고계시는데 한 녀성일군이 찾아왔다.

뜨개옷은 한쪽소매만 마저 달면 다되게 되여있었다.

녀사의 정성이 어린 뜨개옷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 녀성일군은 이미 붙여놓은 소매가 자제분께 좀 길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소매만이 아니라 품도 길이도 다 조금씩 큽니다. 올겨울에 이 쎄타가 꼭 맞도록 빨리 컸으면 해서요. … 》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드님께서는 활달하신 성격그대로 두팔을 이불밖에 활짝 내놓으신채 주무시고계시였다.

녀성일군은 다시 아드님께서 장군님을 더 닮아가신다고, 또 어데라 없이 녀사의 모습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녀사께서는 아드님을 자애깊은 눈길로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나야 닮아서 뭣하겠어요. 아버지를 닮아야지요.》

그러시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니 가슴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하고 절절한 음성으로 이렇게 천천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겉만 아니라 속까지 아버지를 닮았으면 합니다.》

이토록 녀사께서는 어리신 아드님께 자신의 소원과 기대를 모두 담으시였다.

지나간 일을 추억하는것은 그 과거에 다시한번 살아보는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모두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기는 슬픔의 바다우에 다시 서야 한다.

펜을 잡고있는 이 시각 나의 마음은 녀사의 마지막생애와 시기를 날은다.

비록 그 당시를 체험하지 못한 나였지만 목격자, 체험자들의 이야기와 많은 자료들을 통하여 그때를 알게 된 나의 눈앞에는 비분과 절통함에 몸부림치던 당시 조국인민들의 모습이 방불하게 안겨오고 녀사와 영결하던 그날의 비장한 조포소리가 쿵- 쿵- 귀전에 들려온다.

그리고 백년천년이 흘러도 가셔버릴수 없는 그 상실의 고통속에서 되울려나오는 비애와 한탄이 아닌 떠나간분의 유지를 꿋꿋이 지켜가시려는 백두산위인들의 강렬한 맹세도 나는 다시금 더듬어본다.

장의식이 끝난 며칠후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자제분들을 무릎에 앉히시고 창너머 어딘가를 한동안 보시다가 이런 내용의 교시를 하시였다.

정일이의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분이시였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일찌기 혁명에 나서서 돌아가실 때까지 나라를 위하여 용감히 싸운 혁명가이시다. 그가 나를 위하여 한 일은 얼마나 많으며 그 고생 또한 얼마나 많았겠니. 그는 모진 고생을 이겨가며 나를 위해 한생을 바치였다. 해방되여 조국에 나와서도 오직 혁명을 먼저 생각했고 동지들을 위해 모든 일을 다하였다. …

주석님께서는 터져오르는 격정을 억제하시는듯 지그시 두눈을 감으시였다.

잠시후 그분께서는 너희들도 어머니처럼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하겠다고 절절히 이르시였다.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의 그 음성을 묵묵히 듣고계시였다.

돌아가시기 며칠전에도 녀사께서는 저녁노을이 비쳐드는 창가에 앉으시여 자신의 두 손목을 꼭 잡고 아버님께서 건강하셔야 조국이 부강해지고 인민이 잘살수 있다, 아버님을 높이 모시고 아버님의 신변을 철저히 보위하며 꼭 아버님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주석님의 교시와 함께 림종을 세시간 앞두었던 그때 녀사께서 다시금 간곡히 하신 말씀도 김정일장군님의 가슴에 아프게 되새겨지시였으리라.

김정숙녀사와 김정일장군님의 그 마지막대화를 여기에 그대로 적는다.

△ 1949년 9월 21일 (23시 30분-23시 40분)

김정숙녀사:(자제분을 부르시여 두손을 꼭 잡으시고)

내가 공연히 너희들까지 걱정하게 하는구나. 너무 걱정말아. 나는 일없다.

김정일장군님:어머니, 정말 아프지 않나요?

김정숙녀사:조금 누워있으니 편안해졌다. …

김정일장군님:아버지장군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나요?

김정숙녀사:아버지장군님께서는 바쁘시단다. 장군님께서는 오늘도 머나먼 지방에 나가시여 그곳 인민들의 사업과 생활을 보살펴주고계신단다. 장군님은 한가정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수령이시다. 아버지장군님의 존함에 깃들어있는 뜻을 알고있지.

김정일장군님:아버지장군님의 존함에는 우리 나라에 드리웠던 어둠을 가셔주고 인민들을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태양이 되여주실것을 바라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김정숙녀사: … 옳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그 존함의 높은 뜻과 같이 우리 조선의 태양이시며 우리 인민들의 어버이이시다. 저 하늘에 별들이 아무리 많아도 태양을 대신할수 없는것처럼 아버지장군님을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다. 아버지장군님께서 건강하셔야 우리 나라가 굳건하고 부강해지며 인민들은 더 잘살수 있게 된다. 그러니 너희들이 아버지장군님을 더 잘 모셔야 한다. 너희들은 어서 커서 아버지장군님을 잘 모시고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몸바쳐 일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

김정일장군님:어머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아버지장군님을 잘 모시고 장군님의 뜻을 이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녀사께서 생전에 아드님과 나누신 마지막대화였다.

사람이 림종시에 남기는 말은 가슴에 파고드는 법이다.

녀사의 그 마지막당부는 위대한 장군님의 가슴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고 중요한 고비마다에서 더욱 깊이 새겨졌다고 한다.

그 사실들을 보자.

1960년 6월 23일, 중학교졸업을 앞두었던 그때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사진첩을 보여주시다가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 어머니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참 훌륭한분이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저에게 어서빨리 커서 아버지장군님을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늘 가르치군 하시였습니다. 나는 어머님의 그 말씀을 언제나 잊지 않고 위대한 수령님을 잘 받들려고 합니다.》

1964년 6월 18일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시기 하루 전날이다.

그날 저녁에도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어머님의 당부를 뜨겁게 돌이켜보시였다.

《 … 어머님은 수령님을 위하여 일생을 고스란히 바치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처럼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다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것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어린 나에게 장군님께서 건강하셔야 나라의 부강발전도 우리 인민의 행복도 있고 조국통일도 이룩할수 있다고 늘 이야기하여주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어서빨리 커서 장군님의 사업을 도와드려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시였습니다. 나는 어머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수령님을 잘 받들어모시고 수령님의 사업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기는 우리 조국의 력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시련의 시기였다.

위대한 수령, 만민의 태양으로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크나큰 존경과 절대적인 믿음을 받고계시던 김일성주석님께서 뜻밖에도 서거하시고 자연재해가 끝없이 들이닥쳤기때문이였다.

거기에 조국의 존재와 발전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공화국을 고립, 질식, 압살시키려고 각방에서 날뛰였다.

천만가지 애로와 곤난, 시련과 난관이 조국인민의 앞을 가로막고 조선민족의 운명, 사회주의조선의 운명이 판가리되던 역경의 시기였다.

자주적인민으로 사느냐 아니면 노예가 되느냐 하는 력사의 그 엄혹한 물음은 다름아닌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위업을 꿋꿋이 이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가장 중대한 운명문제였다.

그 시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춘하추동, 주야를 가림없이 전선길을 달리시였다.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는 노래를 부르시며 고난의 그 길을 앞장에서 헤쳐가시던 그때 그분께서 가슴속에 흘러내리는 피눈물과 모진 고뇌를 이겨내시게 한 하나의 중요한 힘이 녀사에 대한 추억과 그 마지막당부였다고 조국인민들은 누구나 눈물속에 말하였다.

1996년 11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기회에 또다시 녀사에 대하여 추억하시면서 《… 우리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세시간전에도 … 아버님을 잘 받들고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일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습니다.》 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장군님의 교시의 자자구구를 음미해보느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 시기는 녀사께서 곁을 떠나신지도 어언 반세기가 되여오던 때였다.

하지만 그때에도 녀사께서는 간고처절한 고난의 그 행군길을 아드님과 함께 가고계신것이 아닌가.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이역의 하늘밑에서도 정녕 잊을수 없는 녀사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추억의 세계를 다 헤아려 여기에 적는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장군님께서 녀사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마움을 고이 담아 로씨야녀기자에게 하신 길지 않은 교시가 다시금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의 은혜를 많이 입었소.

장군님께서 녀사와 함께 생활하신 기간은 유년시절의 7년 7개월뿐이다.

그 일곱해 일곱달은 장군님께 있어서 그 어느 100년 한생에도 비기지 못할 귀중한 인생수업의 기간이 되였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리신 아드님의 가슴속에 수령보위의 넋을 새겨주시고 혁명가의 품격을 키워주시였으며 인간에 대한 뜨거운 정,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고스란히 물려주신 김정숙녀사.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것이 기억에서 삭막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녀사에 대한 장군님의 추억에는 표정 하나, 몸가짐 하나도 그대로 뚜렷하게 살아있었다.

나는 확신한다.

김일성주석님을 잘 받들고 그이의 위업을 빛나게 이어나가실 아드님께서 계시여 녀사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에도 밝게 웃으시였을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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